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최악의 모습을 드러내기 가장 좋은 장소는 ‘집’이다.
스스로에게 있어서 남들이 불편하게 느낄까봐 걱정하지 않으면서 진정한 마음 속 감정들을 다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이나 공공장소에서는 우리는 가끔씩 친절하기 위해 ‘꾸며진’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그런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은 그러한 일이 너무 힘들다.
물론 사회 생활을 할 때는 그러한 행동을 겨우겨우 하더라도, 어딘가 그런 우울증을 해소할 곳이 필요하다.
여기 고기능성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 겉으로는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앓고 있는 A씨는 그것을 ‘집’에서 찾았다.
그는 “나는 쉽게 짜증을 내거나 시무룩해지거나 침울해지지 않는다. 대부분이 ‘우울’이라고 여길만한 행동을 하지 않지만, 사실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대학교 시절 최악에 달했을 때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며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볼까 봐 두려워 집을 나가서 수업에 가지도 못했다. 결국 대부분에서 F를 맞았다”고 했다.
그렇게 A씨는 자신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 상담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치료사를 찾지는 않았고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하며 풀타임으로 일하며 침울한 기분은 다시 찾아왔다 사라졌다가 했고, 얼마 전부터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따로 정신 상담을 받을 기운은 없었고, 주치의에게 찾아가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그러는 중에도 주변 사람들은 A씨가 내면에서 무엇을 겪고 있는 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A씨 스스로도 약을 먹으니 겉면처럼 내면도 멀쩡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우울증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우울증은 끊임없는 감정적 괴로움이다. 고기능성 우울증은 끊임없는 감정적 괴로움을 겪으며 겉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어 “내 부모님은 ‘일을 잘하고 강한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며 “그래서 감정적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 나약한 일이라고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A씨는 그렇게 일터에서도 종일 용감한 모습을 유지해야했기에 일이 끝나고 나면 집에 틀어박혀 있기만 했다.
그는 “우울증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스스로 느꼈던 공허함과 비관적인 생각들, 끊임없는 두통이 우울증 때문으로 여겼다. 하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울증은 평생 관리해야 하는 문제였다”며,
“고기능성인 나는 언제나 공허함을 느끼지만, 그걸 집에서만 느끼도록 스스로 강제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느라 감정적으로 너무 지쳐 집안이 엉망진창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즉,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나, 빨래가 며칠 째 밀려 있거나 해도 전혀 그곳에 에너지를 쏟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A씨는 “집이 더러운 건 내가 게으르다는 증거가 아니다.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증거다. 그게 내 증상이다”라며 “집을 조금 어지르면 사람들 앞에서 깔끔하고 철저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물론 이러한 행동을 누군가는 ‘게으르거나 지저분한 것을 포장한다’고 여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A씨는 스스로에게 있어 그러한 행동은 자신의 건강을 반영하는 것이라 여긴다.
A씨는 “우울증이 내 삶 전체를 장악하는 것을 거부하지만, 우울증도 어딘가 있을 곳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내 ‘집’ 안에서 찾았다”며 “내가 남들의 비난을 받지 않고 우울증을 발산할 곳이 필요하다.
그러한 행동은 내가 다른 이 앞에서 미소를 짓고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게 해준다”고 말문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