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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정장입고 소총 든 시민군…”5.18 민주화운동 40주년” 미공개 현장 사진 공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광주에서는 1980년 5월 18일을 시작으로 열흘 동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당시 신군부 세력의 진압에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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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은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등을 죽음을 무릅쓰고 외치며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하 한국일보/박태홍 전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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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일보 기자의 기록 사진 중 미공개됐던 사진이 전해졌다.

 

한국일보는 박태홍(77) 전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현 뉴시스 편집위원)의 현장 취재 현장을 전했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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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홍 전 기자는 1980년 계엄군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개시한 5월 27일 의 아침을 회고했다.

 

그는 “그날 새벽 총소리가 들렸지만 무서워 나갈 수가 없었다. 동이 틀 무렵이 돼서야 카메라를 숨겨 도청으로 향했다. 계엄군이 금남로를 활보하고 YMCA 앞에선 총에 맞은 청년의 주검이 누워 있었다. 도청에 들어서니 계엄군이 시민군들의 목을 군홧발로 밟고 굴비 엮듯 등 뒤로 포승줄을 묶고 있다. 비참한 현장이다.”라며 충격적이었던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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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5.18을 전후로 하여 사진기자 4명을 파견했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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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파견된 기자는 김해운, 한륭, 박태홍, 김용일 기자였으며 처절하고 믿을 수 없는 현장을 2,000여컷 기록했다.

 

그리고 40년이 흐른 오늘날 당시 광주 시민들의 삶이 담긴 미공개 사진이 공개됐다.

 

박 전 기자는 군부의 비상계엄 조치가 전국으로 확대된 지 3일 만인 1980년 5월 21일 밤 광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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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운 전 한국일보 기자

 

열차는 광주역까지 가지 못했고 송정리역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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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 금남로 일대에서 공수부대가 시위대에 집단 사격을 가해 54명이 숨졌으며 시위대는 자체 무장에 나섰다.

 

그리고 당일 오후 5시 30분경 공수부대가 시 외곽으로 철수할 때까지 산발적인 시가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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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홍 전 한국일보 기자

 

박 전 기자는 도청으로 향하기 위해 몰려든 시위대를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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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수많은 청년들이 있었고 그 속에는 맞춤 정장을 입고 소총을 든 여성도 있었으며 다양한 생활복을 입은 사람들이 앞다퉈 시위대에 참여했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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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4일 전남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 집회가 열렸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라고 피켓을 들고 있기도 했다.

 

또한 ‘시민군’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순찰을 돌고 프락치로 의심되는 이들을 색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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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홍 전 한국일보 기자

 

 

그러나 이 ‘시민군’은 훗날 ‘폭도’의 누명을 썼으며 전선에 투입되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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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박 전 기자는 당시 아이들의 이야기도 전했다.

 

박태홍 전 한국일보 기자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 소리에 가슴이 아려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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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적십자병원에는 사망자 명단이 벽을 채웠고 도청 마당에는 관에 들어가지도 못한 시신들이 가득이었다.

 

김용일 전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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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박 전 기자는 광주 시내로 다시 향했고 시내 중심부로 이동을 시작한 계엄군의 검문에서 계엄군 소위가 위험하다며 보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소위는 “오늘 밤 진압 작전이 시작되는데, 만약 도청 지하에 쌓인 엄청나게 많은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면 반경 500m 내는 쑥대밭이 된다”고 말했으며 “내 여동생이 시민군에 합류했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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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특별취재팀

 

시민군 또한 26일 무자비한 계엄군의 진압 작전을 예측하고 여성과 어린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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