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쇠처럼, 집 침대 아래에 잔뜩 쌓아둔 현금에도 아버지는 항상 가난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세월을 보낸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해 왔지만, 88세가 되어서야 아버지가 돈을 숨겨온 이유를 알게 된다.
사실 아버지가 매일같이 애지중지하며 숨겨왔던 돈은 조선의 독립자금이었던 것이다.
지난 15일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에서,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해왔던 하와이 한인애국단의 후손들을 찾아나섰다.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호(88)씨는 너무나도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엄격하고 웃지도 않던 아버지는 미군기지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미군 군복을 세탁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먹고 살기에 무척이나 빠듯한 직업을 갖고 있던 아버지때문에 청소년 시절부터 아르바이트일을 해 집안살림에 보탬을 해야 했었다.
김 씨는 그런 아버지를 항상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면 침대 밑에 돈다발을 항상 숨겨뒀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침대 매트리스 안에 어마어마한 현금을 쌓아뒀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절대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손을 못대게 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행동을 최근에서야 김 씨는 이해하게 되었다. 김씨의 아버지는 한인애국단 단원인 김예준 선생이었던 것이다.
당시 김예준 선생의 역할은 독립운동 자금 관리책이었다.
이는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될 때까지 절대 들켜서는 안되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가난한 아버지가 손에 돈을 쥐고도 철저히 가족들에게 숨겨왔던 이유를 뒤늦게야 알게 된 김씨는 안타까워 했다.
일찍 알았더라면 너무나 힘들었던 가난 마저도 영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운 마음에 김씨는 오랜만에 아버지가 영면에 든 묘소를 찾게 되었다.
비석을 어루만지던 김씨는 결국 오열하게 되었다.
김 씨는 “이제껏 평생 아버지에 대해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며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었다는 걸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제 김 씨는 자식들은 물론이고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세탁소에서 밤새도록 미군의 옷을 빨던 가난한 아버지였지만 자랑스러운 조선의 독립운동가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