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1916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감리교회 선교사인 사애리시 부인(사부인)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장학생으로 편입하고,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하였다.
3월 1일 3.1 운동에 참여하고 3월 5일의 만세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총독부의 휴교령으로 천안으로 내려와 후속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고,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었다. 일제의 교도소 내 가혹행위로 인해 1920년 9월 28일에 사망했다.
2013년에 주일대사관에서 발견되어 국가기록원이 이관받아 11월 19일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유관순, 옥중에서 타살(打殺)”로 기재되어 있다.
이봉창 의사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는 도쿄 교외에서 열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히로히토 천황을 겨냥하여 도쿄 경시청 부근에서 수류탄 한 개를 던졌다.
그러나 이봉창 의사는 마차 여러 대 중에서 어느 것이 진짜 천황이 탄 마차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두번째 마차에 폭탄을 던졌는데, 폭탄은 명중했지만 히로히토는 그가 지나보낸 첫 번째 마차에 타고 있었고, 그 폭탄은 마차를 끌던 말과 그 말에 탄 근위병에게 부상을 입혔다.
폭탄 투척 이후 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때, 경찰들은 이봉창 의사가 던진 줄 모르고 이봉창 의사 앞에 있던 일본인을 구타하자 이봉창 의사는 이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자수를 했다.
이때 침착한 어조로 “숨지 않을 테니 점잖게 다뤄라.”고 말했다. 가지고 온 폭탄 두 개 중 던지지 않은 것은 일본제국 경찰에게 주었다.
1932년 9월 16일 일본 대심원(대법원 격, 현재의 최고재판소)에서 첫 공판이 열리고 바로 9월 30일 오전 9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죄명은 대역죄(大逆罪). 당시 그의 나이 32세였다.
윤봉길 의사
홍커우공원에서의 폭탄 투척을 실행한 윤봉길은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4],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지 등을 처단하고, 총영사 무라이는 중상,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 중장은 실명되었고,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 중장은 다리 절단 중상을 당했으며, 주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한쪽 다리를 잃어 절름발이가 되었다.
폭탄 투척 직후 체포, 곧바로 헌병으로 넘겨지면서 보다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32년 5월 28일 상해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1932년 11월 18일 일제 대양환 편으로 일본 오사카로 후송되어 20일 오사카 육군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2년 12월 18일 가나자와 육군구금소로 이감되었다.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안중근 의사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 이토 히로부미가 나타난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과 러시아어 통역 담당 조도선, 유동하와 조를 나누어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는 차이쟈거우(蔡家溝) 역에,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 매복했다.
하지만 차이쟈거우(채가구) 역의 지하 숙소에 매복하던 우덕순과 유동하는 기차가 멈춘 4분 동안 문이 잠기는 바람에 거사를 일으키지 못했고, 기차는 그대로 하얼빈 역에 정차했다.
플랫폼에 이토가 하차했을 땐 워낙 많은 수행원들이 함께하여 도저히 누가 이토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체념하던 순간에, 이토의 하얼빈 방문을 환영하는 현지 일본인 환영객들 중 누군가가 이토의 이름을 부르자 이토가 뒤를 돌아서서 손을 흔들어준 덕분에 안중근이 이토의 얼굴을 확인하고 FN M1900, 할로 포인트 탄환으로 3발 저격했고 그 주위의 일본 측 인물도 4발 저격했다.
제1탄은 이토의 오른팔 윗부분을 관통하고 흉부에, 제2탄은 이토의 오른쪽 팔꿈치를 관통해 흉복부에, 제3탄은 윗배 중앙 우측으로 들어가 좌측 복근에 박혔다.
3발 모두 급소를 맞혔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총알로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 俊彦)의 팔꿈치에 1발, 이토의 수행비서 모리 다이지로(森 泰二郞)의 복부에 1발, 만주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타로(田中 淸太郞)의 왼쪽 무릎에 1발, 만주 철도 이사 나카무라 요시히코(中村 是公)의 오른쪽 장딴지에 1발을 맞혔다.
그리고 총알 한 발을 남기고 체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