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개요는 이렇습니다,
7월18일 토요일 9시 즈음. 친구들과 서울여행 중 홍대의 한 빈티지샵에 들어가서 옷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 직원이 삼남매냐고 물어보길래 아니다~로 대화를 이어 나가다가 직원이 저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이후는 대화체로 구성하였습니다.)
직원-어디서 왔어요?
우리-광주에서 왔어요.
직원-전라도 광주요?
우리-네
(광주광역시라고 칭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 정도는 모를 수 있다 생각해서 그냥 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직원-광주 무서운 사람들만 살잖아요.
우리-저희가 무서워요?
직원-아니 광주는 폭동의 도시잖아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저희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고 분위기가 가라앉았습니다.
그러자 직원은
직원-제 여자친구도 광주사람이거든요.
라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고 저희는 기분이 상한 상태로 가게에서 나왔습니다.
광주광역시에서 2n년을 살아오면서 한번도 들은 적 없는 발언이라서 정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실제로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심지어 그걸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타지역 사람들이 정말 광주를 폭동의 도시라고 생각할까봐 두려웠고 설령 그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걸 면전에 대고 말할만큼 고객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시당하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이 일은 며칠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저는 부모님을 포함한 저희 삼촌들 이모들 광주에 계신 그 어떤 어른들께도 이 사건에 대해서 언급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무차별적인 죽음과 맞바꾼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항거가 오늘날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폭동’이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요.
광주 사람들에게 5.18이란 마음이 아파서 입에도 쉬이 올릴 수 없는 말입니다. 폭동이라는 두글자로 감히 그 날의 모든 일들을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음은 매장 매니저와 나눈 대화입니다.
사건 후 6일이 지난 일을 이제서야 사과를 받은 이유는 처음에는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가야하나 수십번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저 날 그 가게를 방문한 사람이 제가 아닌 5.18당시 희생자의 자녀분이었다면 그 분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문제를 말씀드려야 다른 광주 출신의 사람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해당직원이 아닌 매장 매니저의 사과를 받았지만 ‘역사적인 농담’이나 ‘코드가 안맞았다’는 단어선택을 보며 더 이상의 사과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5. 18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칭한 것을 홍대의 한 매장에서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담당매니저가 해당 직원에게 내린 조치는 역사교육이 아닌 응대교육이기 때문에 해당 직원은 여전히 왜곡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배재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광주는 폭동의 도시라는 가치관을 가진 직원과 이를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매니저가 홍대의 한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 전달을 위해 덤덤한 말투로 작성하였지만 쓰다가도 몇 번 씩 이름 모를 감정에 가슴이 턱턱 막힙니다.
직원 개인만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매장 명은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직원이 그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오는 동안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사회에 화가 납니다.
피로 물든 금남로를 기억해주세요.
광주를 기억해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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