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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가 도련님 이병철이 흙수저 출신 정주영에게 열등감 가지며 평생 부러워했던 한 가지


양반가 도련님 이병철이 흙수저 출신 정주영에게 열등감 가지며 평생 부러워했던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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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과 이병철은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던 두 양대산맥이었다.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두 명은 출발선부터가 아주 달랐다.

이병철은 지역 유지 양반가문 도련님으로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한 후

(막상 공부에 흥미가 없었는지 도중에 중퇴하고 일본 구경만 실컷 즐기다가 귀국함)

집안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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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자기 사업체를 마련했고(삼성상회)

정주영은 빈농의 아들로 교육을 받지못한 무학이었으며

아버지가 소를 판 돈을 도둑질해서 서울로 올라와서 일한 가게에서

성실성으로 주인을 감동시켜 원래 주인 아들이 물려받을 가게를 정주영에게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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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녹색 잔디를 깔라는 미군의 요청을 받자

잔디 대신 녹색보리로 쫙 깔아서 이후 미군의 수주를 독점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말하자면 이병철은 이미 물고 태어난 금수저를 다이아수저로 바꾼 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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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은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미션을 깨듯이 살아오며 올라간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다.

정주영은 이병철의 타고난 부와 느긋한 여유로움을 부러워했고

일본 명문대 유학까지 다녀온 이병철 앞에 설때마다 무학인 자신의 학력에 컴플렉스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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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삼성은 ‘반도체’라는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며

정주영의 현대를 점점 따라잡으며 80년대 후반부터는 대한민국 대표 기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잘난 이병철도 정주영한테 열등감을 느끼고 부러워하는게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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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서울대에 보냈다는 것이다 (6남 정몽준)

우리가 아는 그 고시원 체험에 버스비 50원 정몽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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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의 학력이 평생의 열등감이었던 정주영의 한을 풀어주었고

동네방네 잔치를 하며 자랑하고 다녔다.

(이방원이 집안 최초로 과거 합격했을때 이성계가 보였던 반응이 데자뷰된다)

반면 이병철의 자식은 서울대 갈 정도의 공부머리는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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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집안엔 서울대 간 사람이 없냐’고 한탄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고

아들들은 주로 와세다대학을 많이 갔는데

‘서울대를 못 가면 일본으로 대학가라’는 의중 때문이었다고 함

이건희도 아주 어린시절부터 일본 유학을 시켜서 일본어를 네이티브급으로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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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건희는 아들 이재용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보내는 데 성공하며

이병철 회장 소원을 손자 세대에서 비로소 풀어주었다.

경기초-청운중-경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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