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실내화가 또 젖었어”
지난해 5월 초등학교 6학년 수진이(가명)가 등교 1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와 떨리는 목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실내화에 축축하게 배어든 액체는 물도 아닌 누군가의 소변이었다.
수진이가 학교가는 걸 두려워하기 시작한 건 그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다.
두 달 뒤인 7월에는 교실 사물함에 뒀던 수진이의 손 세정제 용기에 소변이 채워져 있었고, 치약은 친구의 의자에 범벅돼 있었다.
10월경에 학교에 둔 새로산 실내화가 또 소변으로 젖었다.
11월에는 아예 사물함 바닥에 소변이 흥건했고, 개인 칫솔까지 묻어 있었다.
결국 수사에 나선 경찰이 폐쇄회로(CCTV)에서 가해 학생을 찾아냈다
황당하게도 가해자는 같은 초등학교 학생이 아니었다.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14살 A군으로, 수진이와도 알고 지냈던 오빠 동생 사이였다.
A군은 수진이의 친언니 수정이(가명)와 ‘학원 절친’ 이었다.
수정이는 평소 동생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A군에게도 털어놓고 일종의 고민 상담도 했었는데 수진 아빠는 “A군이 그 얘기를 듣고 수정이를 위로까지 했다고 한다”며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수진이가 CCTV에서 A군 얼굴을 본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극심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인해 “말도 안 된다”며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은 수진이는 그날 밤 하혈을 했고, 이후 자해까지 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수진 아빠는 “딸아이가 다시는 가해 학생을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A군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학 조치해달라고 학폭위에 요청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학폭위는 A군에 대해 ‘강제전학’이 아닌 ‘출석정지(5일)’를 내렸다.
학폭위는 가해 학생의 학교폭력을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정도’, ‘화해정도’ 등 5개 항목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항목당 0~4점을 매기는데, 합쳐서 16점이 넘어야 ‘강제전학’조치가 가능하다.
학폭위가 내릴 수 있는 징계는 총 9가지로 의무교육인 중학교 과정에서 퇴학(9호)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강제 전학이 가장 강력한 조치다.
A군은 심각성과 지속성에서 4점을 받았는데도 고의성과 반성정도, 화해정도에서 2~3점을 받아 총 15점으로 전학 조치를 면했다.
그러나 ‘화해 시도’는 A군의 부모가 수진이네 집에 예고 없이 방문을 한 것이 다였고, A군의 ‘반성’은 진술을 통해서만 이뤄졌다는 것이 수진이 아빠의 주장이다.
그는 “A군에게 어떤 방식의 사과나 반성을 듣지 못했고, 화해가 이뤄진 것도 없다”며 “단순히 ‘수진이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한 행위’라는 가해자 주장을 학폭위가 받아들여 이런 결정을 내린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는 정장적인 절차대로 학폭위가 진행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해당 초등학교 관계자는 “학폭위는 수사기관이 아니라 가해 학생에게 질문할 수는 있지만 취조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다”며 “양쪽 견해를 듣고 반영했다”고 전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대전지검도 일주일 만인 12월 31일 사건을 마무리하고 ‘기소유예’처분했다.
결과적으로 수진이가 받은 고통에 대한 가시적 처벌은 ‘학교 출석정지 5일’이 전부인 셈이다.
수진 아빠는 “수진이는 사건 이후 자해까지 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가해 학생은 여전히 고의로 한 일이라고 인정을 안 하고 있어요. 기소유예는 피해자 조사 한 번 없이 내린 결정입니다”라고 주장했다.
두 달 전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이 사건에 뛰어든 수진 아빠는 새해부터 매일 대전지검으로 가 1인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해 학생을 수사 기관에 재고소할 예정이다.
“학폭위 회의록을 보고 손이 떨렸습니다.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범행했다’는 가해자에게 학폭 위원 중 한 명이 ‘꿈이 뭐냐’ ‘좋아하는 게 뭐냐’고 따뜻하게 물어보더군요. 수진이에게는 별다른 질문도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