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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판’ 코로나19로 인구 20%가 죽던 , 1750년 세종의 ‘매뉴얼’과 백성 사랑


세종대왕의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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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1432(세종 14)4 21~22 세종대왕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극심한 전염병으로 백성들의 신음소리가 궁궐까지 닿자 세종대왕은대규모 인력이 동원되는 토목ㆍ건설공사를 중단하라라는 명을 내렸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세종은 관리들이 제대로 환자들을 구호하는지 혹 생명이 위태로운 자가 있는지 사람을 시켜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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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간단히 말하자면 세종대왕이 직접 컨트롤타워가 되어 감찰단을 파견하고 관리들의 전염병 대책에 잘못이 있는지 낱낱이 파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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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소격전(도교 주관의 제사 관장 부서)을 살피던 감찰단원의 보고가 세종의 억장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소격전 소속 여종 복덕은 시각장애인인데,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복덕은 아이까지 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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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란 세종은 소격전과 한성부 북부지역(북부령) 책임자 등 관리 2명을 문책하여 형조에서 심문하도록 하고 복덕에게 쌀과 콩 각 1석을 하사했다.

 

그 지시는 일회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복덕이 내가 내린 쌀을 다 먹은 뒤에는 또 굶은 것 아니냐앞으로 복덕과 같은 백성은 그의 족친에게 맡기거나, 족친 마저 없다면 해당 관청(소격전)이 끝까지 책임지고 구호해야 한다는 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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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종의 전염병 대책은 괜히디테일 세종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국 초기이기에 제도가 확립되지도 않았었다.

<영조실록> 1750년에 기록된 ‘월별 사망자수’. 매달 28~29일 월별 사망자를 집계했다. 10월 이후의 통계는 보이지 않지만 9월까지의 그해 누적 사망자는 22만3000여명에 달한다.

1434(세종 16) 전국에 전염병이 돌자 세종은 처방문까지 일일이 써서 전국에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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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서에 써있는 처방과 약방을 뽑아 적어 내린다. 수령들이 집마다 찾아다니며 알려주고 정성껏 치료해주라.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과인의 뜻을 저버리지 마라”(<세종실록>)

 

처방문에는 매우 다양한 요법이 다 등장하는데 눈에 띄는 것은 요즘의 코로나19와 같은 급성전염성 질환이 번질 때의 대비책도 포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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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종은죽을 각오로 백성들을 관리하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전염병으로 죽을 처지에 빠진 백성들을 직접 구휼했다.

 

1434~35년 사이 전염병으로 죽은 함경도 백성이 3262며에 이른다는 보고를 받고 면포 5000필을 급하게 나눠줬고 1437(세종 19)에는 굶주린 백성들이 한성부 내 두 곳에 마련된 진제장(굶주린 자들의 무료급식소)마다 1000명씩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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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배불리 먹이려했던 것이 화를 불러 급식소에 모인 백성들을 덮쳤고 사망자가 속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세종은 가슴을 치면서대체 지금 이곳에서 사망자가 왜 속출했는지 그 사유를 낱낱이 기록하라는 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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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분산 수용소의 관리를 중앙 및 서울의 5개 관청 공무원들에게 맡겼고 그 이유는 책임소재르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다.

SBS

그러면서 세종은백성들을 나눠 관리하도록 하는데, 만약 백성 한사람이라도 죽게되면 관리책임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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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인 즉슨, 죽을 각오로 임해 백성들을 관리하라는 뜻이었다.

 

(중략) 원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