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을 보며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생활 풍속과 문화를 엿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데 이 중 몇몇은 지금 현대인의 상식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좀처럼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
당시에는 널리 공유되고 상식처럼 여겨졌던 여러 관습, 민간 치료법, 미의 기준 등은 현대인의 관점에선 다소 이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통점은 오늘날처럼 과거의 사람들도 자신의 가능성, 그리고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하며 살고자 했다는 점이다.
아래에서는 현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과거의 풍습 10가지를 소개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당신이 아래의 글을 읽는다면 살짝 어색하고, 불편하고, 잔인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자.
#1. 고대 로마 : 여자는 장례식에서 울 수 없었다
고대 로마의 장례식은 죽은 이를 든 사람들이 앞서고, 슬퍼하는 친구와 가족들이 뒤를 따르는 거리 행진의 형태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장례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수록 죽은 이의 평판이 좋았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서 몇몇의 돈 많은 사람들은 대신 슬퍼해 주는 ‘여배우’들을 고용해 가족의 평판을 올리고자 했다.
그런데 이 ‘여배우’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이들의 애도 방식이 점점 도를 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피가 흐를 때까지 뺨을 벅벅 긁는가 하면, 머리를 뽑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애도를 표현하며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과한 애도 표현이 엄숙한 장례식 예의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됐다.
결과적으론 전통이 곧 파기되었고 “애도의 마음을 어디까지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률을 제정했다.
물론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는 여배우를 고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포함되었다.
#2. 기원전 1,350년: 임신 여부를 확인할 때 ‘마늘’을 사용했다.
임신과 마늘이 대체 무슨 관계일까?
현대처럼 한 눈에 임신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기구가 없던 먼 옛날, 의사들은 다른 방법으로 임신을 진단했다.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경악스러울 이 방법은 바로 ‘마늘’ 한 쪽이나 ‘양파’를 질 안쪽에 넣고 잠을 자는 것이다.
임신을 의심하는 여성이 마늘이나 양파를 질 안에 넣고 잠을 잔 이후, 다음날 여성의 ‘입 냄새’를 보고 임신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만약 마늘이나 양파 냄새가 날 경우,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질에서 입까지 올라오는 냄새를 막을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늘이나 양파 냄새가 나면 임신이 아니었고, 그렇지 않으면 임신으로 진단했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다.
#3. 고대 로마: 아버지가 딸의 애인을 죽여도 합법
고대 로마의 가족 내 아버지의 권한과 위치는 지금보다 상당히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가 있을 경우 짝을 직접 골라 결혼시킬 수 있었다.
결혼한 뒤에도 딸은 친정의 일원으로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혼전 성관계는 간통죄처럼 간주되어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만약 딸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성관계를 했다 가족에게 들킨다면 아버지는 딸과 딸의 애인을 살해할 권리가 있었다.
특히 딸의 애인이 낮은 사회 계급 출신이라면 아버지는 애인을 죽이더라도 어떠한 법의 심판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명예 살인’은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으며 로마 역사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4. 고대 이집트~19세기: 동물의 대소변은 약재로 취급되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있듯, 정말 동물의 배설물은 약재로 쓰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악어 배설물을 피임약으로 사용했다.
당나귀, 가젤, 개의 대변은 상처에 소독약 대신 바르기도 했다고 한다.
동물 배설물이 약재로 본격적으로 떠오른 건 이부터 한참 지난 19세기부터였다.
제법 최근까지도 동물의 배설물이 사용됐던 것이다.
1697년에 발간돼 1847까지 재출판된 크리스티안 프란츠 폴리니의 저서 <민간요법 처방>에서 그 유행을 찾아볼 수 있는데, 말 대변이 시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젹혀 있다.
#5. 19세기 후반: 가슴 확대술에 유리구슬과 천연고무를 사용했다
오래 전부터 아름다워지고 싶은 사람들은 존재했으며, 그들은 뼈를 깎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여성들은 예뻐지기 위해 크림이나 파우더, 코코넛 버터, 올리브유 등의 재료를 사용했다. ‘가슴 크기’ 또한 미의 기준에서 중요한 문제였다.
고대 사회에서도 성형 수술은 존재했지만, 가슴 확대술은 행해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가슴 확대술은 19세기 후반과 20대 초반에 행해졌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충격적이게도 상아, 유리구슬, 고무공 등을 이용해 가슴 크기를 키웠다고 한다.
#6. 선사 시대~ 중세: 의사는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환자의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사실이다.
몇몇 의사들은 인체에 관심이 아주 많았고, 이 덕에 몇백 년에 걸쳐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이 많이 발견되기도 했다.
머리에 구멍을 뚫는 ‘천공술’도 그 중 하나였다. 의사들은 천공술이 쥐, 두통, 감염 등의 증상을 해결한다고 믿었다.
게다가 악령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병의 근원이니 배출해야 한다는 이유로 ‘천공술’을 실시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방법은 10,000년 정 선사 시대부터 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고대 로마: 아버지는 아들을 노예로 팔 수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해야 했던 것은 아들과 딸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들도 아버지의 말에 복종해야 했는데, 설령 그 말이 ‘노예가 되어라’ 여도 따라야만 했다.
그리 널리 행해지던 풍습은 아니었지만, 가난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어쩔수 없이 아들을 노예로 파는 아버지들은 존재했다고 한다. 로마의 계층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8. 고대 이집트: 키우던 고양이가 죽으면 애도의 의미로 눈썹을 밀었다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고양이가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사람들은 고양이 함께 사는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준다고 믿었다.
만약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을 경우, 가족은 애도의 의미로 자신의 눈썹을 밀었다고 한다.
자신의 눈썹털이 다시 자라날 동안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털짐승을 추억하겠다는 의미였다.
#9. 고대사회~18세기: 여성은 납과 황을 이용해 머리카락을 염색했다.
아주 먼 옛날에도 사람들은 머리카락의 색을 바꾸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쇠나 철 등의 중금속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물질들을 염색약에 사용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시민들은 황을 사용해 염색을 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긴 머리카락을 염색할 때 알칼리를 사용했는데, 이는 물질을 부식시키므로 염색에도 당연히 좋지 않다.
많은 유럽인들은 사프란과 황 파우더를 섞어 멋내기 염색을 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머리카락 염색을 하면 두통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10. 고대 로마: 칸막이 없는 공중 화장실이 존재했다
고대 로마인들이 공중 화장실이나 목욕탕을 이용했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개인 화장실과 목욕탕은 일부 부자들에게만 허락되었다.
당시의 화장실과 현대의 화장실을 비교해 보면 현대의 화장실이 디자인과 위생 부분에서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