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버지가 시집간 딸이 시댁에서 받은 돈을 빼앗아가 도박판을 벌이고, 그 돈마저 잃어 버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일제시대 조선에서 제일가는 파락호(가문의 몰락을 부추긴 사람)라고 불린 김용환의 딸 김후웅는 바로 그 일을 겪었다.
김후웅의 시댁은 장롱 하나 마련 하라며 돈을 줬다.
노름꾼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이 돈을 가져가 도박판에 쏟아 부었고,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집안을 망하게 한 파락호”라며 비꼬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문에 이름난 조상 학봉 김성일을 빗대어 “우리 집안에 ‘학봉’과 ‘난봉’ 두 봉황이 나왔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니냐?”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전 재산을 도박으로 탕진했다.
경북 안동 일대에서 유명한 명문가의 장손으로 태어난 김용환은 한때 의병 부대에 일원으로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에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겪고 풀려난 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름판을 전전하며 집안의 가산을 탕진하는 도박꾼으로 전락했다.
김용환이 도박판에서 날린 재산만 무려 200억원이 되었다.
하지만 김용환이 도박꾼이 되어 전 가산을 탕진해야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의 감시와 방해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독립운동을 도울 수 없다고 판단한 그가 자금 조달을 위해 도박꾼 행세를 한 것이었다.
그는 도박판에서 돈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라진 재산에 대한 의심을 피함과 동시에 만주의 독립군에게 자금을 조달했다.
김용환은 자신에게 파락호라는 비참한 수식이 따라다녔음에도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김용환을 보고 그의 동료가 “이제 만주에 돈을 보낸 사실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나?”라고 묻자 “선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나”라고 대답하고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
뒤늦게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된 딸 김후웅은 시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오늘에야 알고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값 그것마저 다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中 –